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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여행작가 <권리>의 <암보스 문도스> 발췌

 

주안 신기시장 <건강백세약국>에서

 

 

일주일 간의 연 이은 송년회를 마치고.

일요일 점심을 먹은 후 약국에 앉아 책을 읽고 있자니 피로와 함께 잠이 쏟아져 오네요.

 

베네스엘라는 칠레와 30분의 시차가 났지만 문화적인 차이는 30광년 쯤 되는 것 같았다.

살인적인 더위,살인적인 물가,살인적인 분위기.

수도 카라카스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낮엔 덥고 부랑자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1위가 바로 카라카스였다.

 

지금 당장 냉동창고에 넣어 두었다가 50년 후에 꺼낼만한 인물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라틴아메리카의 G. 마르케스를

꼽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다.

아흔살 노인이 10대 창녀와 사랑을 나눈다는 발칙한 내용이다.

 

쿠바를 여행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두사람이 있다.

그들은 체 게바라와 헤밍웨이이다.

헤밍웨이는 체 게바라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았다.

아프리카의 수렵 체험을 바탕으로 한 <킬리만자로의 눈>과 쿠바 생활을 담은 <노인과 바다>는 여행을 좋아한 그가 평생

유럽과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을 누비며 쓴 글이다.

쿠바는 그가 가장 아끼던 곳이었다.

그가 머물던 저택과 호텔 < 암보스 문도스>는 쿠바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국가라는 단위는 이미 1980년대에 끝났다.

1990년대의 사회 구성단위는 개인이 되었고 2천년대에는 말 못할 정도의 파편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제 타인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타인보다는 나의 관심을 끄는 한 명의 타인이 훨씬 중요하다.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재정의할 기회를 주었다.

미시(微視)의 시대,현대인들은 각자 저마다 각자의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블로그에,트위터에.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미시사(微視史)를 한 편의 책으로 펴내기도 한다.

이제 역사는 더 이상 승자들이 쓴 일기가 되지 못한다.사람들은 각자의 역사를 꾸리기 시작했다.

타인의,승자의,가진 자의 역사가 아니라 나의,우리의,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역사에 더 집중한다.

작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가 거대한 강물의 흐름을 이어간다.

딜레마는 더 이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택일에서 오지 않는다.

이미 자본주의의 승리는 밝혀졌다.

 

작가는 감정 노동자이다.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자주 밖으로 꺼내 놓아야 하므로 어떤 면에서 피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피부 밖으로 드러난 살은 세상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 들이고.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고 남보다 더 많이 상처받고 홀로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고독해진다.

 

한쪽의 세계가 나를 힘겹게 할 때마다 나는 유럽의 냉정함과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아프리카의 배고픔과 아시아의 여정 따위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는 꿈을 꿀 것이다.

타인의 기준과 상관없이 나만의 <암보스 문도스> 왕국에서 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런 꿈에 부푼 지금 나는 칠레인의 속담처럼 '벼룩이 득실거리는 개보다 행복하다.'

 

장장 6개월간의 긴 시간에 걸쳐 읽은 처녀 여행작가 <권리>의 여행에세이 <암보스 문도스>-양쪽의 세계-를 이제야 완독했네요.

읽을 시간이 없는데다 잠깐의 시간이 난다 하더라도 집중이 안 돼 중단에 중단을 반복하다 보니 이리 됐네요.

책 한권 읽기가 참으로 어렵군요.

그래도 오랜만의 독서에 자부심을 느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