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시욕이 유난히 심하다.집은 없어도 너도나도 차는 장만하는 게 요즘 세태이다.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도 길엔 자동차가 넘쳐 난다.
80년대 초 오너드라이버가 대세일 때 나도 자동차를 장만했다.
제일 처음으로 산 차는 정말 고물차였다.문이 잘 안 열렸다.시동도 수시로 꺼졌다.즉시 먼저 주인에게
차를 되돌려 줬다.그리고는 할수없이 작은 새 차를 구입했다.어머니는 사고나지 말라고 그 앞에서
고사도 지내셨다.일요일이면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괜히 돌아 다녔다.
인천 반대쪽인 강릉에다 변산까지 다녀 왔고 강화도도 한바퀴 돌았다.
지금까지는 집주변에서만 놀았는데 자동차가 생기니 갈 곳이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졌다.
아이들은 우리 집 차로 씽씽 달리니 신난다고 휴일만 되면 나가자고 조른다.
운전 미숙과 졸음 운전으로 사고가 날 뻔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자가용 차로 세상을 즐기며 살았다.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남들도 모두 차를 가지게 되고
가 볼만한 데를 대충 가 보고 나니 차를 몰고 다니는 일도 점점 시들해 졌고 드디어 작년 11월 말
11년된 자가용 승용차를 처분하고 오너드라이버를 탈출했다.
처음엔 승용차로 출퇴근하다가 최근 5년간은 한달에 한두번 자동차를 사용했다.처분할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먼 곳을 갈 때는 차가 아쉬웠기에 그렇게 긴 시간을 보냈다.이 기간 운전면허가 있는
우리집 네식구 중 아까운 우리 애마를 이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2년 전부터 아들 녀석이 사업을 한답시고 내 차를 출퇴근용으로 끌고 다니다가 고장이 잦다고 처분하고
나니 그나마 있던 차가 내 호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럴 때는 대개 술을 한잔씩 걸치니 아예 차를 안 가지고 간다.지금 출근하는데는 도보로 10분 밖에
안 걸리다 보니 평일엔 차를 쓸 일이 없고 일요일에는 전철이나 버스 또는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젠 대중교통이 아주 편리하고 좋아졌다.경제적으로도 차가 있을 땐 유지비가 최소한 50만원 이상
들어 갔으나 가끔 장거리 택시를 이용해도 한달에 20만원이면 족하다.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 특히
팝송을 휴대용 MP3P로 여유롭게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다.정신건강은 물론 걷는 일이 많아지니
육체건강에도 좋다.
젊은이들을 가까이서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듣고 보게 된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전철은 젊은이천국이다.생기발랄하고 사랑이 넘치고.즐거운 표정들로 가득하고.전부 미남,미녀이고.주로 서울을 다녀서
그런지는 몰라도 패션도 반짝거리고.특히 연인들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차 안이나 길거리에서
기를 많이 얻어 오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다.무엇보다 생각이 여유롭고 깊고 넓어졌다.
승용차에서 보는 세상하고 버스나 전철 안 풍경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살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은 집이나 삶의 현장에서 고달프게 지내느라 길거리에선
보기가 힘든 것인지.못 생긴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그들은 길거리를 안 다니는 건지.
전에는 승용차로 오로지 집과 약국 밖에 모르고 살아 왔으니까.
지금은 기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친구들이 나에게 역주행을 경고한다.
나이 들어서도 마라톤을 열심히 해 가며 시력이 좋아졌다고 떠들지를 않나 남들은 좋은 차 사려고 안달하는
마당에 차를 처분하고 걸어 다니지를 않나.남들은 모임과 사회생활을 줄여가며 정리해 가고 있는 시기에
모임 수도 늘리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니.
생각하며 살고 싶다.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싶다.자동차의 편리함에 길들여진지 30년.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을 찾아 세상을 즐기고 싶다.
인천 남구 소식지 <나이스 미추> 7월호와 제고 동창회지 <춘추> 가을호에 게재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