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처럼 소금처럼> 소개문

이 책은 제가 평생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에 기고했던 글 모음입니다.
여기에 미발표작 6편을 추가하였고 앞쪽에 일반 추억 사진을 넣었고
맨 뒤편에는 약력 증명용 사진첩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 뒤에 3편의 축사가 있는데 그 중 마지막은 나의 대학 이후 절친인
서울대 약대 교수를 지냈고 한때 식약청장을 역임한 심창구 동기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는 나의 성격과 지나온 과정이 소상히 실려 있습니다.
뒤 표지 안쪽에는 나의 내자가 그린 그림 3편이 작게 실려 있고요.
평생 쓴 글이 아마 300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대부분
블로그(밤 해변의 검은 파도)에 실려 있고 블로그 북도 만들었지요.
매체에 발표한 글이 더 있지만 블로그 글은 대부분은 미발표작이고요.
이 책에는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강 150장 가까운 사진이 들어 있는데
원 발표작에 들어 있던 것도 있고 글 중에 새로운 사진도 추가하였지요.
원래는 3년 전에 출판 계획을 세웠는데 코로나로 연기되었고요.
만날 수가 없었으니까요.
글을 고르는데 3개월, 사진 고르는데 3개월, 제작에 3개월 걸려서
거의 1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됐고요.
새로 쓴 글이라고는 발간사 하나 뿐이었는데.
약국 일로도 힘겹게 지내고 있는데 틈나는대로 작업을 하자니
나이도 있고 해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5번의 교정과정을 거쳤으니까요.
내가 알기로는 다행히 오자가 하나도 없네요.
발간사에 나와 있지만 1978년 개국 이후 1981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40년간 쓴 글을 모았습니다.
이 책에는 내가 간직했던 비밀 내지 창피스런 내용이 여럿 포함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약국 부문에 있는 <나의 약국 잔혹사>이지요.
약국 흥망성쇠를 기록한 글인데 이런 내용을 발표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인지
내가 알기로는 개국약사 최초의 자세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고료를 받은 글이 여럿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약사공론'에 발표한 <한라산 등정기>이지요.
인천 약사 마라톤 동호회 달인약(달리는 인천 약사들)에서 한라산을 단체로 등반한 이야기인데
다 아시다시피 전문지에는 원고료가 없고 문예글은 맨 뒤편에 실리는데 이 글은 신문 맨 앞 3면에 실렸고
초빙작가에만 지급하는 원고료(아마 7만원)도 받았던 글이지요.
KBS 1TV에 출연했는데 5시간 촬영에 출연료는 고작 5만원이었던 것도 기억에 남고요.
5만원 중 방송DVD 구입에 3만원을 지불했고요.
보람이라면 적자 사업자에게 직원 중 최고 급여자와 같은 소득에 해당하는 건강보험료와 연금보험료를
징수하는 것이 모법에 위배돤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었지요.
모법에는 실제 소득에 대해 부과한다고 되어 있는데 소득이 거의 다 드러나 있는 개국약사에게
소득 확인 절차없이 소득이 불투명하다면서 보험공단에서 멋대로 직원 최고 급료를 적용하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많은 적자 업체에서 이런 불법, 부당한 적용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KBS 얘기로 보험, 연금 공단에 수많은 자영업자로부터 항의를 받아서 거의 업무가 마비되었다고 하더군요.
여기 출연하기 전 보험공단, 연금공단, 복지부 보험정책과, 연금정책과에 공식 항의 민원을 14차례 제기했으나
모두 성의가 없었고 이 문서를 합치니 20장이나 되더군요, 거의 책 수준입니다.
전문직 소개서<약사가 말하는 약사>에서도 노력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나름 많은 고료를 받았고
구청 건강강좌에서는 당시 시간 당 30만원의 강의료를 의사와 동일하게 받았지요.
동아일보에서는 원고지 3장으로 많은 고료를 받았고 동아약보, 일양 사보에서도 꽤 많이 받았습니다.
여행은 별로 가지 못했는데 동창회에서 기행문 담당을 하다 보니 기행문은 많이 썼고 책은 많이 읽지 못했는데
읽은 수에 비해서는 많은 독후감을 썼네요.
1987년 현대백화점 시절 과로로 계속 쓰러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 때가 글의 단절 시기였고 이제는 절필했네요.
스스로 평가할 때 가장 좋은 글은 PPA(콘택 600) 사태를 지적한 칼럼과 <한라산 등정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