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인연주의자> 부제 ; 평생문집 <횃불처럼 소금처럼>을 만들면서

흑파 2023. 5. 19. 21:36

 

참 많이도 만났다.

장가 간 아들도 한달에 한번 보기 힘든 세상에, 책 만들고 한달만에 평생 만난 사람들 3백여명을  다 연락하고 만났다.

 

나에게 책을 만들도록 밀어붙이고 제목을 만들어 준 고교후배 김수현 작가와 출판사 사장을 시작으로 한없는 만남이

시작되었다.

표지사진을 맡긴 고교동기 제1 절친 김건흥 교수, 그리고 대학 때부터 늘 가깝게 지내 題字를 부탁한 대학동기 염정록

교수로 계속 이어졌다. 원래 축사를 부탁했던 5명은 전화와 카톡으로 만났다. 실제로는 그 중 3명만이 참여했지만. 축사를 부탁한 평생 제1 절친 심창구 교수에게는 전체 원고 검토까지 부탁해서 수시로 이메일과 전화로 만남을 이어갔다. 많은 조언도 받았다. 존경하는 중, 고, 대 선배이자 실무 약학 멘토인, 인천 학익동을 주름잡았던  <장 약국>의 장정일 선배에게도 축사를 부탁했다.

나는 인연주의자이다. 인연을 중시하며 살아왔는데 다행히도 아주 가까이에 책을 만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전문가

그룹이 있었다. 그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나에겐 행운이기도 하고 축복이었다. 그리고 내자의 간략한 그림까지.

나는 산에 가려고 친구를 만나지 않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산에 간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부터 약사회를 비롯한 각 단체장에 이를 알렸고 제작 중간 보고도 했고 제작 후에는 상세 설명을

전달했다. 단체 카톡방이 있는 경우에는 여기에도 수시로 과정과 내용을 알렸다. 집안, 대학,  중고교, 국민학교 동기회와 인천약사마라톤 동호회 <달인약>에, 지금은 친목단체로 남아있는 개혁적 약사단체 <전국약사연합>까지 6번의

출판기념회를 한달에 해냈다. 처음에는 집안 모임만 가지려 했으나 각 동기회, 친목회의 요청으로 이렇게 많은 모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많은 수량을 모두 개별적으로 나눠줄 수도 없었고. 집안 친목회는 사촌까지만 초청대상으로

했고 20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30명이나 되는 친척이 모였고. 

 

배부 대상자 선정도 쉽지 않았다. 일단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집단 위주로 했지만 그들에게도 거의 모두 개별적 연락을 취했다. 동기회라도 전체 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동기 친목회, 동호회에만 참석했다. 전체 동기회에 참석하면 받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줄 수도, 주기 싫거나 별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 안주기도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알리고 승락을 받고 난 후에야 발송했다. 덜 친하지만 약사회, 동기회나 친목회 등 단체의 요직을 맡은 사람에게는 대부분 책을 보냈다. 주로 카톡으로 했지만 연락받은 사람이 반길까, 마지못해 보내라고 하는 건 아닐까, 책값 보낼 생각에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머리 속이 복잡하다. 이렇게 평생 만나고

관계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책 앞장에 해주는 저자 서명은 보통 받는 사람 이름에 주는 날짜, 저자 이름으로 간단히 써주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나 나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이름 앞에 상대방에 대한 느낌을 나타내는 표현인 "사랑하는, 사랑스런, 보고 싶은, 친애하는, 멋진,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자주 만나고 싶은, 그리운 ㅇㅇㅇ에게"라고 써주어 친밀감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 사람을 묘사하는

예쁜, 우아한, 강철사나이, 울트라마라토너, 황소 고집, 막무가내, 약사 사랑(회장에게만)을 붙여주기도 했다. 날짜 다음 줄에는 그 사람에게 하고 싶고 바라는 내용을 넣었다. "건강하세요, 우리 우정 영원히, 보람이 이어지기를, 오래 오래 보자, 

자주 보자"라고 써넣었다. 내 이름 앞에는 그와의 인연을 넣었다. "미추홀구에서 만난, 달인약을 같이 한, 달리기로 만난, 필드하키를 같이 한, 56년 우정에 빛나는, 서울약대를 같이 다닌, 제고를 같이 다닌, 계동을 같이 다닌, 약사연합에서 만난,

산에서 만난, 오랜 인연, 현대백화점과 미래약국을 같이 한(직원에게),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김태욱"으로 써주었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집안출판기념회에는 형제, 조카, 사촌 등에게 책값은 절대 안 받고 식대 등 행사 비용도 내가 부담하겠다고 신신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들에게 당일 봉투는 절대 받지 말라고 했지만 참석자 전원이 거의 동시에 봉투를 연단에 던지 듯 내놓는 바람에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사촌까지만 초청했는데 7촌 재당고모에 8촌 동생, 9촌 조카까지 참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이종사촌 동생은 원래 출국일자를 일주일 연기하면서까지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고거래처 등 지인에게 자랑해야 한다며 10권이나 가져갔고 조카들은 5권씩 가져갔다. 부부가 따로 가져간 경우도 있고 모자 각각 가져가기도 하였다. 사촌, 조카 세  명이 책 중 글 1편씩을 부분적으로 낭독하고 책을 만난 소감도 한마디씩했다. 안출판기념회는 여러가지로 감동이었지만 책값에 대한 걱정을 강력히 제기해 주었다. 애초에 책값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모임을 가지면서 책값문제가 계속 현실화되었다. 책값이라기보다는 축하금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사절하는 것도 어느 정도이지 끝까지 거절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여 안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특히 국민학교 동기생들은 안 받겠다고 선언하고 나갔는데도 막무가내로 봉투를 쥐어 주었다. 지금 모두 은퇴한 상태이고 재산이나 가진 돈이 많지 않은 것을 다 아는데. 동기회의 자랑꺼리인데 오히려 그보다 많이 주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에 그져 그 정성이 고마울 뿐이었다. 물론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 갚아줄 생각이다.

 

심창구 교수가 소속된, 56년 된 대학 인천동기 부부친목회 <함춘약우회>에서는 거액의 축하금은 물론 꽃다발에 축하케잌까지 준비해 주었다. 고교 등산친목회에도 많은 친구들이 모여 출간을 축하해 주었다. <달리는 인천 약사들> 모임에는

조상일 회장 포함, 가장 많은 40명이나 되는 많은 회원들과 인천약사들이 발간 축하에 참가해 주었다. <전국약사연합>도 수원에서 특별 모임을 가지고 환영해 주었다.

 

대학 동기 카톡방에서는 지속적인 광고를 했는데도 신청을 하지 않는 절친이 있어 왜 그러느냐고 두사람을 콕 짚어 물었더니 미국까지 보내기가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들어 미안해서 참고 있단다. 쓸데없는 걱정말고 주소와 전번을 알려달라고 해서 보내줬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 거주하는 6명의 동기들에게도 보내줬다. 해외 동기들은 항상 고국 소식이 그리워, 받고는 엄청난 반가움과 고마움을 보내왔다.

친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의외로 소극적 반응을 보인 경우도 있고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 책을 받고는 엄청 반가워하고 감격해 통화를 잇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친구는 그 뒤로 별도로 만나 4시간씩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옛 얘기, 요즘 얘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사진을 많이 넣으면서 원래 의도했던 바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책 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는 엄청나게 반갑고 기쁜 반응을 보였다. 받고 나서 고맙고 반갑게 받았다고 회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깜깜 무소식인 경우도 있고. 독후감을 짧게 보내달라는 부탁을 많이 했는데 일부 독자들은 정성껏 독후감을 보내주기도 하여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3부에 나누어 독후감을 세세히 적어 보내주기도 하고 4부를 각 부 별로 나눠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 사는 친구는 글 한편마다 일일이 독후감을 열심히 보내주기도 하였다. 이 또한 감동이었다.

잊혀졌던 나만의 옛사람과도 전화와 카톡 상으로 엄청 많은 대화를 이어갔고 이렇게 하여 사라졌던 역사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일부는 직접 만나서 전달하고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고 받은 후 만남도 있었다.

약사회에서는 사전에 미추홀구에서 김명철 회장이 구입을 약속하더니 인천시약, 대한약사회에 이어 경기도약사회까지 대량 구매에 나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집안, 친구들 중에는 책 발간을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많아 나도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책을 받은 후 카톡이나 문자로 소김을 보내왔는데 읽고 있는 중에 휴대전화와 유선전화가 동시에 와서 당황한 적도 있다.

책 발간이 이름 그대로 평생 준비한 사업이긴 했지만 그 과정과 발간 후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못했으나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보람, 감격, 인연을 찾아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는 하였으나 직접 닥치고 보니 인생과 인연에 대한 물음표와 정리, 재평가가 계속 내 눈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머리 속을 아롱거렸다. 그 바람에 한동안 잠잠하던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세상은 인연으로 시작해서 인연으로 끝난다. 이달 들어서도 인천, 서울은 물론 고양, 안산, 수원에서도 달려오는 걸 보면 인연이란 게 신기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