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라톤 시작, 그 이후

흑파 2014. 6. 14. 12:00

 

마라톤으로 닦아낸 눈물자욱.hwp

 

 

봄이 활짝 핀 승학체육공원엔 어두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걷다가 내가 달리니 내 뒤를 따라

달리는 사람도 있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다. 이 시각, 남자들은 직장에서 귀가 중이거나 술집에서 한잔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나의 마라톤 역사는 시작된다. 내 고장 인천에서도 10년 전부터 마라톤대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걸리기 시작했다. 1987년, 부평현대백화점약국을 시작하면서 함께 한

테니스와 휘트니스 런닝 역사가 15년이고 그보다 약간 뒤늦게 시작한 등산도 15년이나 됐으니까, 약골이긴

하지만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은근히 들기 시작했다. 주로 벤치를 지키긴 했지만, 중학교 때는

하키선수로 전국체전에도 출전해 보았고, 교내 단축마라톤에서는 4백명 중 21등까지 했었다.

마침, 나는 오랜 암울기를 지나 막, 밝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시기였다. 10년 전, 같은 건물에

서너개의 의원이 들어 온다는 계약서까지 확인하고 신축건물 1층 상가를 거액을 주고 구입해 약국을

이전했으나, 달랑 내과의원 하나만이 들어와 불을 밝혔고 그나마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전을 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약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곳은 임대를 주려고 하였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부푼 꿈은 사라지고 참으로 힘든 나날이 시작되었다.

5년간을 깜깜한 터널 속에서 살아야 했다. 아들, 딸 모두 혼기가 꽉 차 결혼을 시켜야 했으나 파산 지경에

이른 지금, 그런 일은 감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각자 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결혼자금을

마련한다는 건 기대 난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른 셋, 스물 아홉이 되도록 자식 둘 다 결혼

상대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감히 결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TV에서 아무리 재미있는 개그프로를 보아도 웃음이 나오지를 않았다.

마지막 3년간은 불면증으로 신경안정제를 달고 살았고,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도, 화장실에 다녀 오다가도,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길가의 변호사나

법무사의 <파산, 이혼 전문> 광고를 보면, 불안감과 슬픔이 더욱 나를 엄습해 왔다.

터널 생활 5년이 꽉 찬 가을 어느 날, 드디어 동생인 딸이 결혼하고 싶다며 건장한 총각 하나를 집에 데려왔다.

신기하게도 딸 상견례 직후인 2008년 12월, 지금의 약국 자리를 바로 계약하게 되었다. 이듬 해 봄,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비우고 나온 상가도 드디어 임자가 나타났다. 절망의 나락(奈落)에서 희망의 나라로

옮겨가는 순간이었다. 검은 파도처럼 밀려왔던 불행은 사라지고 ‘봄의 소리 왈츠’처럼 경쾌하게 행복이

찾아 왔다. 대학 졸업 후 생활전선에 나서면서, 집안을 통째로 책임지고 살았지만 그 동안 입학시험도,

직장도, 약국도 모두 탄탄대로였다. 평생 처음 겪어본 위기였다. 사위가 복덩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나긴 눈물로 눈두덩이는 그대로 부어 있었다. 한동안 이뇨제를 먹어 보았지만 부기는 빠지지

않았다. 딸 결혼식 날, 부어 있는 내 눈을 보고 후배가 울었냐고 물었다. 그 날, 난 울지 않았다. 마라톤을

하면 땀을 흘리면서 부기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극한 스포츠인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힘은 약해도 도전정신은 강하다. 한번 마음 먹으면

굳세게 그리고 꾸준히 밀어 붙인다. 승부 근성도 있다.

2010년 봄부터, 술 먹는 날을 제외하고는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빠짐없이, 야간에 체육공원에서

5km 정도를 시속 10km로 달렸다. 그 해 가을, 최초의 도전인 인천송도마라톤대회 10km에 출전했고,

이듬해 봄에는 인천국제마라톤 하프에 나갔다. 드디어 2012년 11월 춘천마라톤 42.195km 풀코스에서는,

전혀 걷지 않고 마지막 5km를 전력 질주해 4시간 52분의 준수한 기록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결승선이 있는

대회 아치를 통과했다. 체력이 남으니 아쉬움도 남는다. 마라톤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노력한만큼 기록으로

나타난다. 대학 동기회에서 '60대에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며 공로패를 만들어 주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였고 동기는 처참하였으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라톤대회장에는 활기가 흘러 넘친다. 문학경기장에서, 송도 센트럴파크 그리고 잠실종합운동장,

춘천 의암호까지, 많게는 3만명이나 되는 마라토너들이 전국에서 모여 든다. 모두들 건각(健脚)과

날씬함을 자랑한다. 0도 날씨에도 반팔, 반바지가 가득하다. 하늘은 푸르고 사람은 달린다.

시각장애인도 정상인과 손목을 연결한 채 함께 달린다. 팔이 하나만 있는 선수도 보인다.

함께 달리다 보면 지루함도 잊는다. 춘천에서는 삼악산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병풍처럼 드리운,

아름다운 의암호를 즐기며 달린다. 춘천은 마라톤의 도시로 변한다.

매번 ‘달인약(달리는 인천 약사들)’ 회원들과 함께 나간다. 풀코스 100회 완주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계양구의 박주돈약사가 앞장선다. 그는 강화, 강릉간 한반도 횡단코스를 완주한

울트라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나를 ’달인약‘으로 끌어들인, 부평구의 김성일약사는 처음부터 나의 런닝파트너이다. 내기도 했다.

또 다른 파트너로 홍염미약사가 있다. 각고(刻苦)의 노력이 빛을 발해, 일반인들을 제치고 여자부

연령대별 상을 받아냈다. 30대 신예 김지연약사는 나의 새로운 파트너이다. 10km 실패를 극복하고,

바로 풀코스를 완주한, 불굴의 여전사이다. 식약청장을 지낸, 서울약대의 심창구교수는 나의 가장

열렬한 응원자이다.

마라톤은 내 인생 후반, 도전의 시작이자 끝이다. 긴장과 스트레스, 쳇바퀴의 연속인 약국생활에

이만한 활력소는 없는 것 같다. 땀을 흘린 댓가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눈의 부기는 다 가라 앉았다.

근력, 심폐 기능이 좋아진 건 물론이고 잡티가 모두 없어져 피부도 고와지고 검었던 안색(顔色)이 밝아졌다.

불면증을 깨끗하게 거둬냈다. 비듬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코와 이마를 수시로 닦아야 할 정도로 심했던

지루(脂漏)도 사라졌다. 수족냉증, 부정맥, 연변, 잇몸출혈도 자취를 감추었다. 0.7과 0.9로 나빠졌던

시력이, 한참 때와 비슷하게 양쪽 모두 1.2로 좋아졌다. 복부비만이 항상 문제였는데 뱃살도 많이

없어져 허리둘레가 5cm나 줄었다. 몸도 가볍고 제법 옷태가 난다. 무엇보다 발가락이 붙을 정도로,

밤낮없이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의 각질도 거의 사라졌다.

외모나 체력이 좋아지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의욕이 넘치고 아이디어가

마를 줄 모르고 샘솟는다. 표정도 좋아지고, 고객에게 친절하게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고, 환자에게

복약지도도 열심히 하다 보니 약국도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마라톤이 내 생활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그동안 맡아왔던 약사회 감사에다, 새로이 동창회와 구청 주민참여 모임에도 중책을 맡았다.

거기다가 '일반약 약국외판매' 문제로 무려 50편이나 되는 칼럼을 썼고 약사회 내부 투쟁, 약사회장

선거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작년 봄에는 직업소개서 <약사가 말하는 약사> 기고와 구청에서 주최하는

임상강좌 기획과 강의까지 성공적으로 해냈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들이다.

노래방에서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2010년 말에는 기독교방송 음악 FM에서 사연이 채택돼,

120만원 상당의 가족사진촬영권을 받아 커다란 가족사진도 만들었다. 신나는 일의 연속이다. ‘달인약’의

김형윤회장은, 날보고 ‘뒤에서 보면 20대, 앞에서 보면 40대’라고 놀린다. 엄청 기분좋은 희롱이다.

친구들과 마라톤 얘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무릎관절 부상과 함께 사고를 염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퇴행성 관절염이 오기 쉬운 시기이니,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과욕만 버리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나는 조심 훈련으로 관절이 좋아졌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내가 만약

사고사(事故死)한다면 그건 내게 커다란 행운이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얘기해 준다.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Marty Robbins의 <Don't Worry>를 마지막으로, 팝송을 한시간만 듣고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테고.

마라톤은 도전정신, 끈기, 성취의 결합체이다. 목표와 의욕을 무한 생산한다. 꿈과 목표가 없는 삶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땀으로 상체의 열이 발산돼 머리가 가벼워진다. 신진대사는 활발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니, 몸의 모든 기능이 좋아지고 질병도 치유된다. 수영이 팔을 주로 사용하는

수중(水中) 유산소운동의 여왕이라면, 마라톤은 다리를 주로 사용하는, 지상(地上) 유산소운동의

황제라 할만하다. 중년 이후에는 하체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모든 마라토너는 배우자로부터 사랑받는다.

마라톤은 산소이고 젊음 회복제이다.

마라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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