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금은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 <약사가 말하는 약사> 중에서(최종원본,상)

흑파 2013. 6. 5. 19:25

지금은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

 

 

김태욱

1949년 인천 출생.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77년 약국을 개설해 현재

인천 남구 한나루로에서 다사랑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시약사회 약학위원장과 인천시 남구약사회 감사를

지냈고 현재 대한약사회 대의원,법제위원을 맡고 있다.인천 남구청에서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고

지역 의약품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약국과 마트 사이’ 등 많은 칼럼을 쓰고 있다.

 

약사님,비아그라를 먹으면 성기능이 좋아진다는데 나같이 고혈압도 있고 부정맥이 있는 사람이 먹어도

되나요?”

“비아그라는 원래 심장약으로 개발돼 심작박동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거든요.그래서 부정맥 환자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고 일시적으로 혈압을 높이는 경우도 있어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군요.운동을 하지 말라는데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요?”

“그게 아니고 과격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조깅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은 고혈압이나 부정맥에

도움이 되지요”

70대의 남자 환자가 있는데 좀 떨어져 있는 의원에서 처방을 받아서는 반드시 내 약국으로 온다.대개

아침 9시쯤 오는데 내가 출근 전이면 약국 앞에서 기다렸다가 약을 받아간다.약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처방전을 두고 갔다가 다음 날 가지고 간다.그는 약국 근처가 아니고 승용차로 30분이나 되는 거리에 산다.

약국에 오는 환자 중 가장 반가운 사람은 이렇게 내 말을 듣고 싶어하고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올 때마다

약에 대한 것은 물론 운동과 음식 섭취에 대한 것도 한가지씩은 질문을 한다.바쁘지 않으면 내 지식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친절하고도 자세히 설명을 해 준다.

“2만원짜리 약 타 가고 배워 가는 건 2백만원짜리네요”라며 아주 고마워한다.운동과 생활,섭생에 대한 것은

사실 의사가 전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은 진찰과 진단,치료,처방하는데만도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것에 대한 설명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다.물론 약국약사들의 하루도 쉴새없이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을 할애하면 별 것 아닌 것으로도 환자들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이 정도야 상식으로 알겠지 하는 내용도 모르는 환자가 태반이다.

 

주민에게 다가가는 약사가 되고 싶어

 

80대 노인 환자가 오셨다.무릎하고 허리가 아프시단다.우리 약국은 정형외과 처방이 거의 다라서 환자는

대부분이 50대 이후이다.

“물리치료 받고 오시는 거지요?”

“네,시원하긴 한데 그 때 뿐이지요 뭐”

“그래도 열심히 받으셔야 해요”

“이 조제약에 네가지 약이 들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안트라퀴논’이라고 염색이 되는 약이 들어 있어서

이 약 먹으면 소변이 노랗게 나오니까 놀라지 마세요”

“그런 약도 있군요”

“이 약은 관절이랑 근육염증 치료도 하지만 관절 기능도 좋게 하니까 당분간 꾸준히 복용하셔야 해요”

“그래야 겠네요”

“내외분만 사세요?”

“요즘 다 그렇지요 뭐”

“자녀 분은 자주 오세요?”

“자주는 뭘.1년에 두세번 올까 말까지요 뭐”

“먼 데 사나요?”

“멀진 않지만 바쁜 것 같아요”

“두분만 사시는데 그러면 안 되지요.요 뒤에 경찰서 있잖아요.거기다 신고해야 겠네요”

너무 좋아하시면서 깔깔 대고 웃으신다.

“적당히 가벼운 운동하시고요.매일 동네 한바퀴씩 도시고요.지나가다가 약국에 들러 아픈 얘기도 하시고

궁굼한 것도 물어보세요”

“하루 이틀 아픈 거 아니고 만날 때마다 아픈 얘기만 하시면 자식들도 듣기 싫어하잖아요.약사는 아픈 얘기

듣는 게 일이니까 와서 하세요.그런 얘기 듣기 싫으면 약사 그만두어야지요 뭐”

“알았어요.약사님,고마워요”

동네 주민들과 친해지려 노력하고 농담도 자주 한다.아무리 바빠도 복용방법 외에 거의 한마디 말은 건넨다.

환자들에겐 그 한마디가 매우 중요하다.약이든 질병이든 건강이든 생활이든 이 한마디를 통해서 그들이

궁굼해하던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질병을 치료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생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준다.특히 근무 중에 할 수 있는 운동방법이라던가 자세까지 알려 주면 환자들이 굉장히

좋아한다.이는 일반의약품과 의약외품 등을 취급하며 주민들과 늘 가까이 있는 동네약국 약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매력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더 우리를 믿고 의지한다.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약국외적으로

보건리더로서 지역활동도 충분히 가능하다.

 

“시위대가 인천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인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를 모두 차단하는 경우와 제2경인고속도로만 차단하는 경우는 효과나 부작용면에서

차이가 있겠죠? 다 막으면 효과는 좋겠지만 다른 차량 통행에도 지장을 주니까 부작용도 심하고 하나만

막으면 부작용은 적겠지만 효과도 약하고.그렇겠지요?”

일반 소염진통제와 COX-2 저해제(유해반응을 현저히 감소시킨 관절염 치료제)가 효과와 부작용 면에서

어떤 차이가 나는지 설명할 때 내가 곧잘 하는 비유다.

“고혈압 약을 왜 한꺼번에 4종류나 먹어야 하나요?”

고혈압약으로 ARB, Ca-blocker, beta-blocker, 이뇨제의 4종이 동시에 처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물어

오는 환자들에게도 쉬운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해 준다.

“비포장도로의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지요. 일단 도로를 포장하는 방법이 있겠죠.

도로를 확장하는 방법도 있고요. 또 교통 흐름을 막는 건널목을 줄이거나 신호등을 조정하는 방법도 있고.

이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을 다른 곳으로 빠지게 해 교통량을 줄이는 방법도 있겠지요”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 머리에 쏙 들어온다며 매우 고마워한다.

약의 효능이나 복용방법,메카니즘,부작용,배합금기,주의사항 등 의약품에 대한 설명을 환자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조제를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기는 힘들어

 

 

조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배합이 아니라 처방검토와 복약지도이다.사실 배합은 기계적이라서 이미

조제량이 많은 대형약국에서는 이를 기계화해서 심지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조제가 완성되는 완전

자동화시스템도 사용한다.물론 나같은 소형약국에서는 아직도 일일이 약포지 하나마다 한알씩 담는

재래식 조제방식을 사용한다.그렇다고 배합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우리나라는 환자들이

급하다 보니 약사도 급해져 약을 약주걱에 넣는 순간 옆 주걱으로 튀어 한 쪽에는 약이 둘이고 다른 쪽엔

약이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약포지에서 약주걱을 빼는 순간 조제대로 떨어지는 경우,약포지가

포장기에서 잘 안 눌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아무리 조심해도 차분히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실수를 아주 없애기는 어려운 것 같다.

본인 확인도 중요하다.드물기는 하지만 심지어 의원에서 남의 처방전을 들고 오는 경우도 있고 매번 이름을

불러 본인 확인을 하는데도 전화나 다른 생각을 하다가 아무 생각없이 남의 조제약을 들고 가는 경우도

있다.동명이인이 동시에 들어오는 경우도 보았다.

 

 

환자 맞춤형 복약지도가 필요해

 

 

복약지도에서 개별의약품의 효능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건 기본이다.조제약의 경우 위장해 예방과

복용 편의를 위해 식사 30분 후에 복용하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고혈압약처럼

위장해 등이 적을 때는 공복시 복용이 원칙이고 위장약 등 식전에 복용하거나 제산제 등 식간에 복용해야

하는 약,흡착성 지사제처럼 다른 약과 2시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복용해야 하는 약도 있다.의사가 지정한

경우가 아니면 아침에 복용하느냐 저녁에 복용하도록 하느냐 또는 식전에 먹느냐 식후에 복용하느냐를

약사가 결정해 알려 주어야 한다.이 경우 효과 외에도 환자의 생활 여건을 고려해 정해야 한다.

40대의 한 환자가 고혈압약,당뇨약,고지혈증약을 한꺼번에 처방받아 조제를 해 주었다.이런 약은 1일 1회

복용하는데 보통은 아침 식전에 복용한다.

“아침 식사 하나요?”

“잘 안 하는데요”

“저녁엔 술도 가끔 하지요?”

“자주 하지요”

이런 경우 고혈압약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고,당뇨약은 아침 식전에 먹고

고지혈증약은 저녁에 먹는 것이 원칙인데 이렇게 따로 먹으면 실제로는 복용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

한꺼번에 먹도록 한다.이 경우 아침에 먹으면 혈당이 너무 떨어져서 안 되고 저녁 식사 전에 복용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면 술을 마실 때는 약을 복용할 수가 없기도 하고 복용을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이 사람은

당뇨약 복용시간이 가장 중요한데 아침을 안 먹으니 점심 식사 30분전에 복용하도록 지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을 약사가 지시한대로 복용하는 사람이 30% 밖에 안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환자가 기억하기 쉬운 시간이나 방식을 택해야 잊지 않고 복용할 수 있다.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사용 평가, 즉 약사가 의사 처방의 안전성을 검토해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을 도모하는 일) 실시로

다른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의약품에 대한 복용 방침이나 같이 복용하면 안 되는 약을

환자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위장이 안 좋은 사람에게 위장해가 심한 약을 처방했을 때는 이에 대한

대처방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처방이 잘못된 경우도 볼 수 있다.의사가 직접 처방을 해야 하는데 의사가 바쁘다 보니 처방지시서를

일반 직원에게 보내 그 직원이 처방전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알고도 실수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수면 안 되는 훼스탈이나 둘코락스 같은 장용정이나 빈혈에 쓰는 훼로바유,천식에 사용하는

아스콘틴같은 서방정을 반으로 나누거나 가루로 만들도록 하는 처방도 있다.이렇게 되면 효과가

없어지거나 둘코락스같은 경우는 위에서 녹으니 위를 흔들어 위경련과 함께 구토를 일으키게 된다.

서방정의 경우는 약이 일시에 녹아 혈중 농도가 일시에 높아지게 되고 짧은 시간에 배출돼 지속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의사들은 약물상호작용이나 제형에 대한 지식이 약해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이를 알려 주거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처방을 검토한 약사와 처방한 의사 사이에 충돌이 생길 수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