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새 친구
10여년 전에 고교 동기회 총무를 맡았다.
지금은 좀 한가한 편이지만 그 당시는 약국이 엄청나게 바쁜 시절이었다.
전임 총무와 회장이 약국에 와서 진을 치고 있다시피 강권하여 할수없이 승락을 했다.
그러나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1년에 한번 하는 회계보고도 행사가 끝날 때마다 했고
6백명이나 되는 모든 회원의 경조사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러다가 동기 산악회에도 가입하고 별도로 만나는 인천 친목회에도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얼굴이랑 이름만 알았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고 전에 친했던
친구들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새롭고 좋은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도 되고 이름도 모르던 동기도
알게 되었다.그건 내게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그 중 한명이 현재 동기 산악회 <네일회>의 총무를 맡고 있는 유재명동기이다.
그는 주철(鑄鐵)회사 사장을 거쳐 지금은 상임고문을 맡아 매일 출근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출퇴근 중에는 항상 93.9에 채널을 맞춰 놓고 듣는단다.
내가 저녁스케치 얘기를 하다 보니 자기도 애청자라며 자기가 나보다 더 '배미향씨 팬'이란다.
내 신청곡이 나가면 어김없이 잘 들었다고 문자가 온다.내 방송 들었다는 사람이 열명은 되는 것 같다.
나도 방송에서 팬이 생겼다는 게 기분이 좋다.
다른 친구들이 '태욱이는 여자를 너무 좋아해' 그러면 유재명이는 '태욱이가 좋아하는 여자도
많지만 태욱이를 좋아하는 여자도 많아' 이렇게 나를 감싸주는 인정많은 친구이다.
음악이랑 등산이라는 취미도 같아 어울리기도 좋다.
사실 나는 여자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형제도 보고 싶고 사촌,조카도 만나고 싶고 웃사람도 찾아 뵙고
친구,후배와도 어울리기를 좋아하는데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산에 가도 친구들은 나만 놀린다.
내가 자기 부인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해도 '우리집 사람은 아직도 젊어 보이니까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단 말이야'라며 좋아한다.글도 맛깔스럽게 잘 쓴다.
고교 여름방학 때 단 둘이서 덕적도에 놀러 갔던 청주 친구도 40년이 넘어 졸업 후 처음으로 작년에
대전에 가서 만났고 첫 직장 동료였던 유명 제약사 사장도 거의 40년 만에 인천 내 약국에 오라고 해
단 둘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말도 없고 새침하고 사교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나서지도 못하고 글도 못 쓰고
좋아하는 여학생한테 말도 못 걸고 항상 주눅 들어 있고 시쳇말로 반죽도 없고 사회성도 없고
그야말로 학교나 가고 공부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부모님과 선생님 말 잘 듣는 소위 범생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때부터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말문도 트였고 졸업해서는 우연히 글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약국약사라는 게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밤도 없고 토요일,일요일도 없는 그야말로 돈 쓸 시간이 없어서
돈을 모으게 되는 힘든 직종인데다 늘 약국이라는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살다 보니 약사 이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이 오십이 되면서 친구가 그리워 동기회 모임에 열심히 나가다 보니 총무,회장도 맡게
되었고 학교 때보다 훨씬 많은 친구 속에서 살게 되었다.
몇 안 되는 예전 친구는 지금 나에게는 주위에 거의 없다.
옛 친구는 옛 친구일 뿐,지금 나에게는 이런 새 친구가 소중하다.
주변에 이렇게 친구가 많다 보니 요즘은 내 평생 가장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 간다.
* 만약 선물을 받는다면 이번 선물은 유재명이한테 주어야 겠어요.
글이 너무 긴가요?
언젠가는 한번 다루어 보고 싶은 소재였는데 책이 나온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급히 만들어 보냅니다.
저녁스케치 코너 중에서 여기에만 아직 방송을 타지 못했거든요.
그 동안 이 코너는 귀담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신경 써서 들어 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