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대전 김응일 종가 방문 및 비단강(금강) 견지낚시 체험 여행기

흑파 2011. 6. 11. 17:45

 

나는 6월 4일 토요일 오후 4시 약국 문 굳게 걸어 잠그고 광명역으로.

KTX 타고 대전역 7시 20분 하차.

사돈 내외랑 대림호텔 한식부에서 저녁식사 겸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바깥사돈이 술대장임.우리말로 고래)

10시에 제고 때 가장 친했던 친구 40년만에 만나 또 한잔.

12시에 다시 대림호텔로 들어 와 취침.

 

5일 아침 10시 대전역에 가니 내가 1등.바로 대전사람 박경인동기,김응일집행위원장이 나타나고.

승용차편으로 온 최순만,윤돈동기를  마지막으로 동기들과 부인들 21명이 모두 도착했고.

동행하는 데일리팜 조취재본부장과 정기자도 취재차 합류.

버스타고 충북 옥천군 비단강(금강)으로.중간에 김응일동기 부인 태우고.

12시에 도착해 2시간 견지낚시.

견지낚시란 여울(흐르는 물)에서 깻묵을 강바닥에 떨어뜨려 고기를 모으고 구더기를 낚시밥으로 하여

낚시줄을 잡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고기를 낚는 우리나라의 토종낚시로, 순수 우리말이며 문헌상으로는 정조때

최초로 언급돼 있고.

견지낚시대는 고급품은 30만원 정도 하는데 이번에 사용한 것은 불량품을 공짜로 얻어 왔다는군요.

좀 유치하지요?

김응일동기는 금강 견지낚시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는 낚시광.

강물속에 들어가 무릎까지 집어 넣고.구명조끼는 여자만.

낚시 문외한인 우리를 도와 주는 조교 5명이 우리의 모자라는 실력을 채워 주었고.

모두들 평생 처음 해 봤어요.

금강에서는 눈치가 기본 어종이고.

나는 20cm짜리 잡어 두마리 잡아 상은 못 탔고.

최순만동기가 42cm짜리 거대고기를 낚아 1등.

심창구추진위원장은 최동기랑 같은 조라서 덩달아 1등상,현금 10만원을 탔는데 자기가 잡기라도 한 양 희희낙낙.

두명의 데일리팜 취재진은 촬영에 여념이 없고.

시상 후 강 가에서 준비한 즉석 노랑콩국수를  열무김치와 곁들여 먹는 재미란 도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진미였고.

비경 속에서 낚시랑 음식 먹는 게 완전 신선 놀음입니다.이 맛이야 !

 

3시에 다시 버스 타고 대전 동구 신하동 충암 김정公의 17대손인 김응일의 종가 고택에 4시 도착.

입구엔 응일이가 준비한 <서울약대 67동기회 방문 환영>이란 플래카드가 나붓기고.

98세 어머니께 단체로 절을 드리고.

저녁에 안승호회장 내외 도착.이제 모두 23명.

이 종가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종가하고는 차원이 다른,종가 중에서도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不遷位(불천위)宗家로

학식 또는 업적이 뛰어나거나 사회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새로운 집안의 출발점으로 지정하며 四波之地를 제공하는데

이는 불빛이 보이는 끝(아니면 징소리가 들리는 데)까지의 땅 소유권을 부여하는 파격적인 지위라 합니다.

불천위는 현재 우리나라에 1백곳에 불과하다 하니 우리 모두 대단한 종손의 친구가 되는 셈이지요?

김동기의 17대 선조인 경주김씨 충암김公 김정선생은 34세에 형조판서를 지낸 중종朝의 대표적 학자로 조광조와 함께

반정공신으로 인한 폐해척결과 현량과 신설,향약의 전국적 시행,미신 혁파 등 개혁을 주도하다가 당시 집권 세력의

미움을 사 제주도로 유배된 후 死賜되었고.24년 후인 인종 원년에 복권되었고 270년 후인 정조 때 불천위를 하사받게 됨.

종가의 조건은 祀堂,고택이 있어야 하고 종손,종부가 거주해야 하고 宗中이 있어야 하며 捧祭祀(봉제사),接賓客(접빈객)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고 하며 우리는 賓에 속한다는군요.

지금도 어머니는 아침마다 주위 묘소,신도비,사당(산해당),충암공의 부인의 충절을 기린 정려각 등을 한바퀴 돌아보고

일상 업무를 시작하시고 밤에는 귀가하는 아들을 위해 반드시 참외 세쪽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신다는군요.모성애가

지극하십니다.

아들이 공부도 잘 하고(우리나라에서 최고라 하신다.ㅋㅋ) 특히 영어는 물론 효도가 세계 최고라고.

하긴 딸 넷 낳고 다섯번째 얻은 장손이라니까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입니다.낳고 동네 잔치도 거창하게 했다니까요.

같은 남자가 아니지요.

  

역사 얘기를 들은 후 7시에 불고기 가든 파티.물론 막걸리 곁들였고.

저녁 먹고 이어진 옛날 학창시절 이야기들.

지금 들어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학교 때 얘기의 선두주자는 대웅의 이종욱사장.

당시 경희대 앞에서 당구장을 하던 자기네 집에 많은 친구들이 다녀 갔는데.

제일 민폐가 심했던 사람은 지금은 딴나라 사람이 된 이상명동기였다고.

술에 만취해 종로5가에서 인사불성이 돼 길에 쓰러져 있는 이동기를 종욱이가 집으로 데려와 재웠는데 옷에 토한 음식

냄새가 잔뜩 배어 집에서 처리하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고.

최 모동기는시험기간에 자주 공부한답시고 왔는데 공부는 안 하고 새벽에 일어나 잔글씨로 컨닝페이퍼를 준비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작은 글씨 쓰는 실력이 대단했다고.

찬효는 공부는 안 하고 걱정만 하고.

선근이는 역시 공부 안 하고 담배만 열심히 피웠다는군요.

참 그래도 졸업한 게 다행이군.

종욱이는 당구대를 침대로 썼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네요.

심박사 왈, 여자 둘이 모이면 질투.셋이 모이면 육젖이라는군요.

여자판사,검사,변호사를 합치면 法조개(조개는 순한글이고).

이 정도야 알아서 들으시겠죠?

순만이와 태욱이는 40대라는데 의견을 모았는데 거의 매일 장시간 운동을 한다네요.

순만 제의로 태욱과의 40대 팔씨름이 벌어졌는데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손목을 잡히고도 태욱의 완패.

태욱 왈,중년이냐 노년이냐의 구분법은 뛸 수 있느냐 여부라네요.여러분도 다같이 밤마다 달립시다.

윤돈동기는 한국에 인슈린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는데 내프킨을 준비해 나눠 주는 등 서구의 매너로

내자들의 극찬을 받았는데 해외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혀 달라는 요청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아쉬움을 보였고.

거구의 백동기는 건강 때문인지 무척 조용한 상태를 유지했고.내자는 대단한 패션을 선보였지만.

또 하나의 거장 윤승모는 내외가 따로 약국을 하다 보니 예전과 달리 시간에 많이 쫓기고 있었고.

선근이는 왕년의 개구장이 모습을 여실히 재현했는데 부인한테까지 전염이 됐다는 게 중평.

현 최고의 hope 나박사는 딸이 와 있다고 저녁 식사 후 바로 귀가.

안회장 내외는 늦게 관사로 귀가했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합류.역시 회장이라니까.

종욱이가 노래방 가기를 청하였으나 모두 막걸리를 마시는 바람에 대리운전을 불렀으나 없어 포기.안타까워라 김태욱.

12시에 잠자리에 들고.물론 종가 강당에서 남녀별로.

 

새벽 5시 되니 저절로 잠이 깨서 바깥 바람 쏘이고 들어와 할일없어 다시 잠을 청해 보나 다시 잠이 안 오네요.

윤승모동기 내외는 약국 개문 관계로 새벽에 상경.

피곤하긴한데 바닥이 딱딱해서인지 더는 잠이 안 오고.

결국 6시에 일어나 종가 주위 묘소랑 비석 등을 관람.

10시에 종가를 출발해 공주 갑사로.

가는 길에 김응일동기의 유성 다사랑약국(김태욱의 인천 남구 다사랑약국과 동명)에 잠깐 들러 박카스 얻어 먹고.

갑사 한바퀴 둘러 보고  시내 들어오는 길목에서  점심으로 <옛날어씨네>의  장어구이.참게탕의 황홀한 음식을 맛보고 .

계룡시 동학사 잠깐 들러.

여기서 안회장,종욱,선근은 승용차로 별도 귀경.

다시 대전역으로 와 동기회 여행단 해산.

친구들과 함께 하니 기분은 좋고 즐거운데 장시간 노는 여행이라 피곤하군요.

 

하지만 좋습니다.

팔,다리 멀쩡할 때 친구들이랑 놀러 다닙시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참석자 ; 김응일내외,김태욱내외,안승호내외,이종욱내외,심창구내외,윤승모내외,최순만내외,박선근내외,백철기내외,

            박경인,윤돈,나도선 이상 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