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파란 검은 파도라는 뜻이지.
내가 주로 20대 때,그러니까 총각 때 얘기인데 여름 휴가 때가 되면 항상 바다를 찾았지.
그 땐 내가 제약회사를 다닐 때였지.
난 파도를 아니 파도소리를 유난히 좋아했고 그래서 밤만 되면 혼자 바닷가에 나가 물가를 거닐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
그 때 부르던 노래가 Don Gibson의 <Sea of heartbreak>랑 Andy Williams의 <Strangers on the shore>였지.
보통 2~3시간에 걸쳐 수십번씩 부르곤 했지.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없어졌다고 나를 찾아 다니느라 야단법석을 떨곤 했었지.
결혼하고서는 이 습관이 없어졌지만(이젠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 혼자서 여행을 떠나면 이 습관은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고.
필리핀으로 약사회에서 여행 갔을 때도 그랬지.
혼자 온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다가 또 따로 나가 해변 풀밭에서 그 노래들을 열심히 부르며 누워 있었지.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 소리가 나 눈을 떠 보니 일행들이 날 찾아 헤메다 드디어 찾아 냈다고 모였더라고.
술을 좀 마시고 나와 취해 있었거든.
늘 그래.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계시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그 이후 센티멘탈해질 때가 많았는데
대학도 장학금 받아 가며 거의 혼자서 졸업했고 졸업해서는 우리집 생계를 도맡아야 했고.
집안에 얘기 상대가 없다 보니 외로움에 가슴을 때리는 이런 파도가 좋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
한 10여년 전부터 號를 하나 짓자고 마음 먹었는데 마땅한 게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서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두 달 전 쯤 생각이 떠올랐지.
그래 지은 이름이 바로 흑파지.
보통 흑짜 들어가는 호는 잘 안 짓는데 좀 특이하지?
파도 중에서도 밤 해변의 파도,더 나아가서는 달빛도 흐릿한 밤의 파도소리를 즐기니까.
그럴 듯 해?
나이 먹어 이름 부르면 뭐 하니까 號를 부르라고 친구들한테 얘기하는데 아직 黑波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냥 나 혼자서 쓰고 있지 뭐.
대단한 건 없고 대강 이런 거지 뭐.
그냥 그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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